조선일보 기고 -김용덕 대한파킨슨병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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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6-04-07 조회수 70회본문
“파킨슨병입니다.” 의사의 진단을 받은 환자의 삶은 무너진다. 더 처참한 현실은 치료를 위해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질병 치료 계획도, 돌봄도, 재활도 없다. 생계와 일상까지 모두 환자 개인에게 떠넘겨진다. 이에 많은 파킨슨병 환자가 같은 말을 한다. “진단만 있을 뿐 이후 아무것도 없다.” 이 한 문장은 지금 대한민국 파킨슨병의 의료 정책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15만명을 넘어섰고, 고령화와 함께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정책은 늘어나는 환자 수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인 치매는 국가 책임제 아래 전국 단위 관리체계와 안정적인 예산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파킨슨병은 의료와 복지, 재활이 분절된 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남겨져 있다. 동일한 뇌 질환임에도 지원 수준이 이렇게까지 다른 이유를 파킨슨병 환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국가 정책의 부재다.

가장 절박한 문제는 ‘약권’의 붕괴다. 파킨슨병은 평생 약물에 의존해야 하는 질환이지만, 국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치료제는 극히 제한적이다. 주요 치료제인 레보도파 오리지널 의약품마저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파킨슨병 환자는 사실상 복제약에 의존하는 상황에 놓였다. 환자마다 약 반응이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치료제 선택권의 부재는 곧 치료 기회의 박탈이며, 이는 환자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떨어뜨린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신약과 치료 옵션이 활용되고 있지만,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누릴 수 있는 의료적 혜택이 없다.
의료 현장의 현실은 더 가혹하다. 짧은 진료 시간 속에서 충분한 설명 없이 약만 처방받고, 재활과 운동의 중요성조차 안내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파킨슨병 환자는 정보 부족 속에서 잘못된 치료에 노출되거나 사회적 고립과 우울을 겪는다. 특히 고령의 파킨슨병 환자는 정보 접근성이 낮아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는 삶의 의지마저 잃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재활과 돌봄 역시 사각지대다. 파킨슨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관리와 지원이 필요한 진행성 질환이지만, 현재 제도는 초기 중심으로 설계돼 있고 장기적인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 재활과 심리 치료, 생활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체계가 사실상 없는 것이다. 이는 환자와 가족에게 과한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치료제 선택권뿐 아니라 정보 제공, 완화 의료, 지역사회 기반 지원까지 통합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개인이 알아서 버텨야 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신약 도입과 약제 선택권을 확대하고, 질환 특성을 반영한 재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상담과 재활, 운동, 복지를 연계한 환자 지원 체계를 구축해 환자가 진단 이후에도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파킨슨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공의 문제다. 15만명의 파킨슨병 환자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제는 국가가 응답해야 한다.
[기고] 재활도 돌봄도 없는 15만 파킨슨병 환자들… 국가 차원의 통합 지원체계 구축해야

